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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Journal

죽음에 대한 관조



 처음에 시작했던 마음 " 아 명절때 안해봤던것  실컷 해봐야겠다 " 했던 마음가짐은 " 이제 오일 남았네 " " 이제 삼일 남았다 " 마음속으로 카운트 하기 시작했다. 길고 긴 연휴의 시작은 사실 벌초였다. 일년만에 다시 찾은 선산, 약간 어렸을때 가는 마음과는 약간 달라져서 일상에서 벗어난 느긋함을 느껴보고도 싶었다. 오지산골의 숲속은 모르는 곤충들 투성이어서 몸의 신경이 더 민감했다. 산의 내음 그리고 소리들 바람 그리고 산을 오르던 길에서 느낀 죽음에 대한 생각  


죽음에 대한 관조는 솔직히 예전과는 다르다.  그냥 육체적인 "몸과 생명" 그외에 나 라는 "자아" 이것들에서 좀더 자유롭게 생각하는 관점이 생겼고 그래서인지 죽음 이라는것에 대한 큰 슬픔과 더큰 두려움등은 그렇게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완전히 라는 말은 거짓일수도 있지만 그런 생각과 관념에서 많이 벋어나있다는 느낌은 든다. 그래서인지 자꾸 생각을 확인해보고자 하는 상상을 약간씩 하거나 한다. 그런 상상의 끝은 두려움과 슬픔이 당연히 있다. 하지만 존재에 있어서 큰 의미를 두지않는다. 

오히려 내가 지금 현재 무엇에 더 가치를 두고 있는건가 , 무슨 생각과 관념에 얽매여서 부질 없을 수도 있는 일들에 집중하는가 등이 더 크게 다가온다. 어짜피 길지않은 인간이 가지고 태어난 삶에  행복한 마음을 유지하는 방법, 삶의 미련이라는 집착을 버리고 삶을 가꾸는것이 좀더 가치있는 일일것이다.  그리고 나의 눈과 나의 귀 그리고 나의 생각을 혼란스럽게 하는 생각들 에서부터  죽음에 대한 관조는 그렇게 나를 오히려 도와주고 있었다. 


연휴 마무리하는 일요일 삼촌의 부음 소식을 전해들었다. 그리고 그 죽음이 스스로의 것 이였다는것도 듣게 되었다.  이상한 동시성을 느꼈다. 억지 연결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그 죽음에 여러생각들이 교차했다. 나와 비교적 가까운 .. 그리고 그분이 느꼈을 고통 에대해 생각했다. 관심에대한 행동까지 이어지지 못한 나의 후회의 감정도 들었다.  


아마 더 편하시리라 . 어디서의 존재 혹은 어떤곳인지 모르지만 지금 여기의 삶속에서의 고통을 초월한 영원속으로 계시리라 믿는다.  웃고계시는 영정사진의 얼굴이 사는 삶속에서 많으셨다면 좋았을 텐데   삶속의 마음에서 비롯된  집착은 이게 더이상 그에겐 없을것이다. 


나는 과거 그리고 이어진 현재까지 웃고있는가? 그리고 앞으로는 어떨것인가. 죽음은 나에게 스스로 물어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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